한국궁중문화예술원 조선왕조 의궤 반차도 연구소
왜 조선왕조의궤 반차도를
그리기 시작하였는가?
2005년 경복궁에서 행한 친잠의궤를 바탕으로 유일한 왕비주관의 친잠례 재현행사에 혜경궁의 역할로 내외명부들을 거느리고 궁궐로 입궁하여 친잠례 재현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내외 관광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건물만 남은 궁궐에 궁중복식을 입고 의례를 재현하는 것은 잊혀진 조선왕조의 궁궐에 생명을 넣는 것이었다.
친잠의궤 재현행사에 참여하면서 비단으로 된 궁중 복식을 지어 입으면서 이 옷을 입기 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노고로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고 물레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던 그리 멀지 않은 우리 할머니 세대의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여성들의 힘든 노동을 생각하게 되었다. 양잠은 여성들이 부를 창출하여 자녀들이 공부할 수 있는 수단이 돤 경제활동이었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성들의 삶은 가사와 육아, 직장생활 등 힘든 생활을 하면서 조선시대 여성들의 노고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왕비가 누에의 신 서릉씨에게 제례를 올리며 풍잠을 기원(선잠작헌의)하고,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일을 솔선수범하여 여성들의 힘든 노동을 위로하는 애민과 위민의 의례 였다.
여성으로서 이러한 정신을 생각하며 친잠의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의궤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민족대백과사전에 친잠의궤가 소개된 것에서부터 문헌연구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사이트를 수시로 찾으면서 의궤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스에 빼앗긴 외규장각의궤 귀환을 염원하며 반차도를 그리기 시작하다.
의궤를 연구하던 중에 의궤 속에는 반차도라는 그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시간나는 데로 규장각에서 찾기 시작하였으며, 그러는 중에 외규장각의궤가 1866년 프랑스 함대에 의해 침탈당한 사실을 알고 귀환을 위해 외교부에서 제작한 CD 영상을 수없이 보며 의궤를 프랑스에서 1975년 처음발견하시고 연구하시며 귀환을 위해 30년을 노력하시던 박병선 박사님, 1991년 프랑스에 의궤 귀환요청을 하시고 20여년을 노력하신 이태진 교수님의 영상을 수없이 보면서 그 속에 아름다운 반차도가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꼭 의궤 반차도를 그려야 되겠다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의궤 반차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문헌연구와 반차도 속의 순서와 한자로 된 직함들을 일일이 찾고 내용을 연구하여야했다.
의궤의 종류와 내용들을 공부하고 수많은 의계 반차도 중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를 찾기 위해 이성미 교수님, 한영우 교수님 등의 전문가들의 책을 구입하여 세세히 일고 공부하고 수 없이 찾는 작업을 하였다. 조선왕조 의궤 책을 잠 잘 때도 읽고 들고 잠을 청하기 10여년이 지났다.
현존하는 637종의 의궤 중에서 반차도가 있고 유일본으로 사료적 가치가 있거나, 특별히 길고 아름답운 반차도를 선정하여 그리기 시작하였다.
처음 선정한 의궤 반차도는 <후의 정조> 왕세손 가례도감의궤 반차도였다.
정조 때에 외규장각을 지어 어람용 의궤를 빼앗겼기 때문에 이 반차도를 선정하였고, 매일 기도를 하며 프랑스로부터 그 아름다운 의궤가 귀환되기를 기도하며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반차도가 완성될 때에 2011년 4월 프랑스로부터 의궤 반차도가 아시아나 항공으로 귀환되는 광경을 까치발을 하고 넘치는 기쁨으로 지켜보았다. 최초의 습작 반차도가 완성되었다.
도화서 화원 22명이 그린 철종가례 반차도 24m를 혼자서 그려내다.
책으로 되어 있는 의궤 반차도를 어떤 형태로 다시 그려야하는지 생각하면서 문헌연구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제작형태를 두루마리로 제작할 것을 결정하였다.
한 페이지씩 끊여져 있는 반차도를 제대로 해독하는 것도 어려워서, 책의 순서를 잘 찾아 행사의 순서에 맞게 행사전체를 볼 수 있도록 연결해서 두루마리 형태로 그려 행사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본째 작품은 가장 길고 화려한 철종철인후 가례도감의궤 반차도를 선정하였다.
국산 닥종이 위에 종이 위에 먹을 갈아 세밀하게 밑그림을 그리고, 당시 사용한 전통 안료를 과학적인 안료분석을 하여 전통안료를 찾아 채색하였다.
92면의 반차도를 실물크기와 동일하게 두루마리로 그리니 총 길이가 24m가 되었다.
그림 속에는 1981명의 사람과 말 561필이 그려졌다. 당시 도화서 화원 22명이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의 2012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지원사업의 대상자로 선정되어 약간의 지원금을 받고 안료 분석, 값비싼 석채 등 안료와 종이를 구입할 수 있었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 이기전 선생님의 의례 절차에 대한 자문과 반차도 속 작은 글씨를 정확하고 단정하게 써주시고, 장황 이론가이자 최고 전문가인 백록당 고수익 선생님이 24m의 두루마리를 일일이 손으로 접어 두루마리로 연결하여 펼쳐 제작하였다.